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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뉴욕의 흑백 사진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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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가 신웅재는 서울과 뉴욕의 거리를 누빈다. 그 어느 것보다 구체적인 삶 속에 뛰어든 그 사진들 속에,
유독 거창하지 않은 하늘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사진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최고의 학교에 입학했다. 스스로 재능을 의심할 때도 많은 이들에게 칭찬받았다. 장학금도 받았고 뉴욕시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전시회에도 초대됐다. 이후 석 달 넘게 사진을 찍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수업에는 늘 빈손으로 갔다. 어느 날 코니 아일랜드로 향하는 지하철에 문득 몸을 실었다. 그곳으로 가는 어딘가에서 확 트인 곳을 본 기억이 났다. 막상 찾아가 보니 공동묘지였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고, 단 한 명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너 컷을 찍었고 그중 한 컷만이 그나마 노출과 초점이 맞았다. 이 사진이 나를 어둠에서 끌어냈다. 나중에 다시 가보니 꽤나 정신없는 길이었다. 차는 아무렇게나 주차돼 있고 버스 정류소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가끔 사진의 신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긴다. 2012년 3월 4일. 뉴욕은 수도세를 걷지 않는다. 석유왕 록펠러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재단이 뉴욕시 전체 수도세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의 재벌 중 한 명이 서울 한복판에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그가 서울 시민을 위해 한 일은 휘황한 불꽃놀이 쇼였다. 2017년 5월 9일. 뉴욕의 낮, 하늘을 뒤덮은 마천루들. 2014년 겨울.

외치며 여기저기에 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의미한 작업이 얼마나 되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장 깊이 있고 가치 있는 작업을 한 <한겨레>의 사진가 김봉규도 사명감이라는 말을 쉬이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내가 이 참사를 다룰 자격이,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수많은 음식 사진이 사명감 운운하는 거짓 사진보다 도덕적으로나 목적성으로나 훨씬 우위에 있다. 자신이 먹은 걸 자랑하고 싶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좋아요’를 얻고 싶고, 더 나아가 보다 많은 팔로워를 얻고 싶다는 목적의식과 이를 위한 미학이 뚜렷하니까.

다큐멘터리 사진은 곧 현장이고, 나는 서울, 뉴욕과 가장 깊이 관계한다. 하지만 작업으로서 각각의 결은 다르다. 서울의 작업은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도시에 대한 애가다. 남아 있는 것, 사라져가는 것, 흔적, 기억, 한때 존재했던 모든 감정과 삶에 대한 애가. 다른 하나는 이 도시와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삶을 바꾸는, 그것도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바꾸는 보이지 않는 힘, 욕망, 주체는 뭔가에 대한 사회학적, 정치지리학적 고찰과 비판이다.

동부이촌동.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그땐 몇몇 아파트를 제외하곤 전부 층수가 낮았고 동네 어느 곳에서나 남산이 보였다. 2014년 3월 17일. 뉴욕의 밤, 하늘을 뒤덮은 마천루들. 2015년 가을. 금화시범아파트 옥상. 1971년에 시민아파트 1호로 지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이자 근대화의 상징. 재난등급 E를 받을 정도로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주민들은 이미 이곳을 떠났고 빈 아파트만 남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마포 쪽 새 아파트 단지 공사현장이 보인다. 2013년 8월 27일.

하지만 뉴욕은 그곳에 사는 나를 관찰하는 작업에 가깝다. 물론 피상적이고 자기 과시욕으로 가득한 이미지만 소비하고 배설하는, 예컨대 ‘휴먼즈 오브 뉴욕’같은 ‘뉴욕 팔이’에 대한 ‘카운터펀치’의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타임즈 스퀘어 사진 그만 찍고 뒷골목의 노숙자 사진만 찍어야 한다는 말이라기보단 내가 정말 보고 느끼고 숨 쉬는 게 뭔지를 이야기하겠다는 거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화려한 걸 피해 어두운 것만 찍으려고 했는데 도통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다. 내 안의 톱니바퀴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포토 저널리즘적인 접근을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셔터스피드, 조리개, 포커스, 구도 전부 무시하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찍었다. 찍는 순간 생각하고 느끼고, 또 느끼고 생각하면서 셔터를 누르고, 결과물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뉴욕 작업은 일기일 수 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마음 내키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 거리를 배회하며 사진을 찍는다. 아예 한 컷도 안 찍을 때도 있다.

결국 이 작업들의 중심에는 ‘나’라는 인간이 자리한다. 서울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 사람을 프레임에 담지 않고, 뉴욕에서는 대개 행인들을 익명의 방식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대상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나’라는 존재는 확연하다. 서울과 뉴욕의 사진들은 나를 비추고 바라보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내 사진은 인간을 다룬다고 확신한다. 그것이 하늘을 찍은 사진이더라도. 서울의 하늘에서는 바벨탑처럼 인간의 들끓는 욕망, 그러나 결코 닿을 수 없는 지향을, 뉴욕의 하늘에서는 고독과 허무, 나를 억누르는 투명한 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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